30,747
回編集
(→韓牛) |
(→アミの塩辛) |
||
39行目: | 39行目: | ||
=== アミの塩辛 === | === アミの塩辛 === | ||
− | : | + | :広川(クァンチョン、광천)地区では1950年代にアミの塩辛を洞窟内で熟成させる技術を確立した(1960年代半ばとする情報もある)。洞窟内は年間を通して温度が一定であり、品質を保つのにも適している。韓国語で洞窟のことをトグル([[토굴]])と呼び、ここで保存したアミの塩辛は「トグルセウジョッ(洞窟のアミの塩辛、[[토굴새우젓]])」と呼ばれる。アミの塩辛はキムチの材料として欠かせないため、越冬用のキムチを大量に漬け込むキムジャン([[김장]])のシーズンを目前とした、毎年10月に「広川トグルセウジョッ・広川海苔祭り(광천토굴새우젓·광천김축제)」が開催される<ref>[https://www.hongseong.go.kr/prog/tursmCn/tour/sub03_02/view.do?cntNo=42 광천김·토굴새우젓 대축제] 、洪城郡ウェブサイト、2024年6月17日閲覧</ref>。 |
*洪城郡の記述 | *洪城郡の記述 | ||
:洪城郡の観光ページではトグルセウジョッの由来について以下のように紹介している。 | :洪城郡の観光ページではトグルセウジョッの由来について以下のように紹介している。 | ||
− | :「もともとアミの塩辛はチョレンイと呼ばれる甕に貯蔵したが、夏に腐敗して嫌なにおいの塩辛になる場合が多かった。 このにおいを出さない方法を考えていた故ユン・ビョンウォン氏が実験的に1954年、廃金鉱にアミの塩辛を置き、キムチを漬ける季節に行ってみるとよく熟成しているのを発見した。ユン・ビョンウォン氏が洞窟を堀って以来、洞窟の効果を体験した村の人々は相次いで洞窟を掘り始めた。洞窟は石が多くて水のたくさん落ちるところがよいのだが、このような土壌をよく選んだ後、機械の力を借りず純粋に人の労働力でのみ掘った。この洞窟の中にアミの塩辛の甕を置き始めて以来、広川のアミの塩辛は「トグルセウジョッ(洞窟のアミの塩辛)」として知られるようになり、現在は西海岸と南海岸でとれたアミをここに貯蔵し、「広川トグルセウジョッ」として生まれかわらせ、代表的なアミの塩辛の販売団地として地位を築いた」(原文1)<ref>[https://www.hongseong.go.kr/tour/sub04_040302.do 광천토굴의 역사] | + | :「もともとアミの塩辛はチョレンイと呼ばれる甕に貯蔵したが、夏に腐敗して嫌なにおいの塩辛になる場合が多かった。 このにおいを出さない方法を考えていた故ユン・ビョンウォン氏が実験的に1954年、廃金鉱にアミの塩辛を置き、キムチを漬ける季節に行ってみるとよく熟成しているのを発見した。ユン・ビョンウォン氏が洞窟を堀って以来、洞窟の効果を体験した村の人々は相次いで洞窟を掘り始めた。洞窟は石が多くて水のたくさん落ちるところがよいのだが、このような土壌をよく選んだ後、機械の力を借りず純粋に人の労働力でのみ掘った。この洞窟の中にアミの塩辛の甕を置き始めて以来、広川のアミの塩辛は「トグルセウジョッ(洞窟のアミの塩辛)」として知られるようになり、現在は西海岸と南海岸でとれたアミをここに貯蔵し、「広川トグルセウジョッ」として生まれかわらせ、代表的なアミの塩辛の販売団地として地位を築いた」(原文1)<ref>[https://www.hongseong.go.kr/tour/sub04_040302.do 광천토굴의 역사] 、洪城郡ウェブサイト、2024年6月17日閲覧</ref> |
:【原文1】원래 새우젓은 조랭이 또는 조쟁이라 불리는 항아리에 저장하는데, 여름에 부패하여 고랑젓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고랑젓이 생기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고(故) 윤병원 씨가 실험적으로 1954년 금광 폐광에 새우젓을 넣어 보았다가 김장철에 가보니 잘 숙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윤병원 씨가 토굴을 판 이후에 토굴의 효험을 체험한 마을 사람들은 연이어 토굴을 파기 시작하였다. 토굴은 돌이 많고 물이 많이 떨어지는 곳이 좋은 곳인데, 이러한 토질을 잘 고른 다음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진히 사람의 노동력으로만 팠다. 이 토굴속에 새우젓 독을 넣기 시작한 이래, 광천새우젓은 토굴새우젓으로 소문하게 되었고, 현재는 서해와 남해에서 잡은 새우를 이 곳에 저장해 광천토굴새우젓으로 재탄생하여 대표적인 새우젓 판매단지로 자리 잡았다. | :【原文1】원래 새우젓은 조랭이 또는 조쟁이라 불리는 항아리에 저장하는데, 여름에 부패하여 고랑젓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고랑젓이 생기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고(故) 윤병원 씨가 실험적으로 1954년 금광 폐광에 새우젓을 넣어 보았다가 김장철에 가보니 잘 숙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윤병원 씨가 토굴을 판 이후에 토굴의 효험을 체험한 마을 사람들은 연이어 토굴을 파기 시작하였다. 토굴은 돌이 많고 물이 많이 떨어지는 곳이 좋은 곳인데, 이러한 토질을 잘 고른 다음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진히 사람의 노동력으로만 팠다. 이 토굴속에 새우젓 독을 넣기 시작한 이래, 광천새우젓은 토굴새우젓으로 소문하게 되었고, 현재는 서해와 남해에서 잡은 새우를 이 곳에 저장해 광천토굴새우젓으로 재탄생하여 대표적인 새우젓 판매단지로 자리 잡았다. |